연상호 애니메이션 감독의
<시장의 다양성이 소자본 콘텐츠를 활성화 시킨다>에 대한 토론문
토론자 김준양
<Animation: An Interdisciplinary Journal>(Sage Publications) 부편집장(아시아 지역 담당). Japan Society of Animation Studies 국제교류이사. 인디애니페스트 프로그래머.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프로그램코디네이터.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한국영화아카데미 출강.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애니메이션을 둘러싼 정부의 문화산업 정책 및 이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양식에 관한 연상호 감독님의 문제 지적과 대안 제시 잘 들었습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생산된 애니메이션 및 라이브액션 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있어서 이미 확립되어 있던 그것의 글로벌한 배급망이라는 결정적 요소, 그리고 내수 시장, 즉 한국 관객의 문화적 욕구에 대한 분석 작업 등이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다는 지적 등 많은 부분에 공감을 표합니다.
먼저 할리우드의 글로벌한 배급망과 관련하여, 1990년대초 한국사회에서 애니메이션영화가 상업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의 새로운 촉매가 된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어공주>는 1989년 11월 17일에 자국 시장인 미국 국내에서 개봉되었으며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나고서, 즉 작품의 흥행이 확인되고 나서야 한국 시장에 개봉되었습니다. <인어공주> 직전까지의 1980년대 디즈니 장편은 당시 한국에서 개봉된 적이 없었으며, 사실상 디즈니조차도 <인어공주>를 발표하기 전까지 미국 국내에서 약 20년 동안 이렇다 할 흥행을 성취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인어공주>를 비롯해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의 잇따른 흥행에 자극받아 1995년경에 이른바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95>, <헝그리베스트5>, <아마겟돈> 3편이 연달아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작사측이 극장측에 금전적 대가를 미리 지불하고서야 개봉이 가능했다고 말해질 만큼 생산자와 수용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애니메이션에서는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외국으로부터의 수입 작품과 달리 흥행 결과가 미리 확인되지 않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한국의 영화 시장에서 최소한의 가능성을 기대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경험치가 필요하며, 따라서 소자본 혹은 저예산 정책에 의해 다수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런 과제의 어떤 해결책일 수 있다는 데에 원칙적으로는 이의가 없습니다만, 몇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첫째, 정부 지원 정책들이 내수 시장의 분석에 무관심했다는 지적과 함께 제가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애니메이션의 주된 소비자 그룹으로서 그마나 종래에 존재했던 어린이 관객 혹은 어린이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가족 관객을 무시하는 담론이 애니메이션의 생산자측과 수용자측에 모두 출현함으로써 기존의 내수 시장을 부정했던 인상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성공에서 흔히 언급되는 디즈니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본적으로 어린이와 가족 관객을 초점에 두면서 성인 관객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볼 때,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담론이 ‘아동과 가족 관객을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담론으로 전용되어 내수 시장의 발전에 결코 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어린이와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그 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가족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오세암>처럼 프랑스의 안시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조차도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내수 시장 발전에 있어서 어린이 관객을 어떻게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지 감독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둘째, 감독님께서는 다양성 있는 내수 시장의 성장에 있어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의 활성화를 대안으로서 제시하셨습니다. 또한 작화, 편집, 연출, 시나리오 등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전천후 작업자들의 증가에 의해 어느 정도의 기술적 미숙련에도 불구하고 ‘상업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기술’을 아주 소규모의 스튜디오가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실질적인 제작 근거로서 주어졌습니다. 확실히 이는 현재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역에서는 이미 성취되고 있는 측면입니다. 다만, 감독님께서 예로서 제시하신 6억 규모 예산의 장편 프로젝트가 과연 거대 예산으로 제작된 디즈니, 스튜디오지브리, 매드하우스의 장편 애니메이션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한국 관객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미국과 일본의 그와 같은 스튜디오들에서 만들어 온 스타일의 상업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이미 예산과 무관하게 국내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바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더 적은 예산과 소규모의 스튜디오로도 ‘상업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기술’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인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저예산과 소규모 스튜디오,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 추구할 수 있는 상업 애니메이션의 양식이, 아날로그 기술 시대에 거대예산과 피라미드식의 하청 시스템으로 형성되어 온 상업 애니메이션의 그것과 여전히 동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동일할 수 있을지도 의문으로 떠오릅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 사례로서는 미국의 빌 플림턴 감독에 의한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만, 감독님께서 디지털 시대의 저예산 소규모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바람직하다고 전망하시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양식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셋째, 애니메이션 기술자 부분에 관하여 일찍이 한 국내 일간지는 1981년 1월 13일 ‘불황 속의 호황 만화영화 수출’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해외 하청 방식의 애니메이션 수출업 발전을 위해 1, 2년의 해외 연수로 서양인의 감정과 표현 등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어느 업계 관계자의 진술을 긍정적인 어조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즉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의 손들이 해외 관객의 감정과 표현을 위해 훈육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해외 하청 대신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이 제창되어 왔지만, 현재 대학에 개설된 애니메이션 전공 교육은 그러한 하청 현장 기술의 방침과 얼마나 다른지, 이를테면 기술적으로 한국 관객의 감정과 표현을 얼마나 중시하는 교육인지 궁금합니다.
넷째, 건강한 내수 시장의 발전을 위해 애니메이션 기술자의 처우 개선이 지적되었습니다. 국내 기획 혹은 창작 애니메이션의 생산 현장에서 애니메이션 기술자의 노동 착취가 과거의 하청 현장에 못지않은 듯한 우려와 의혹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처우 개선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최근 상황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