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예술과 문화는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중의 삶의 질이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에서 자신의 취향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기는 데 까지 다다르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문화에 소비를 하기 시작하며 현대의 산업에서 문화 사업은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산업이 고도화됨에 있어 개개인의 취향들이 모여 문화를 만들기 보단 거대 자본이나 산업이 제공하는 취향에 개개인의 취향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획일성을 띄게 되었다.
문화 산업이 자본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개개인이 가진 취향과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면서 그런 개개인중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취향과는 다른 개개인의 취향에 더 충실한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개개인들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개개인들은 자본이 주도하는 문화 산업과 별개로 독립적인 방식으로 개개인의 취향에 더 충실한 제작 방법을 만들게 되었다. 이런 문화 현상들이 지금의 독립 예술, 독립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예술에서 이런 경향은 아무래도 자본의 간섭이 심한 (한마디로 제작하는 데에 돈이 많이 드는) 문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독립영화, 독립 음악) 그리고 그런 욕구들이 모인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며 독립예술은 자신들 만의 가치관과 영역을 확장하게 되고 그 중 개개인의 취향임에도 대중의 취향을 관통하는 새로운 경향은 다시 주류가 되고 주류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자본이 주도하는 문화 산업의 형태가 지금까지의 것을 고집하는 데에 있다면 독립 문화는 아직 주류시장이 시도하지 못한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며 주류 문화가 미쳐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 중 주류가 될 수 있는 개개인의 취향이자 대중들의 취향을 관통하는 영역을 넓혀간다.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독립애니메이션은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한국의 애니메이션 문화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1960년대 말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제작되었을 때만 해도 분명 개인의 취향이 대중의 취향을 관통하며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70년대에 이르며 이 모든 것은 문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자본의 욕구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한국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하청 작업을 시작하며 외화벌이의 일등 공신이 되었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뒤따랐다. 1967년엔 우수영화보장제도가 있었고 1972년 만화영화 용역 수출 개발에 대한 계획이 정부에서 빵빵 터져 나왔다.
우수영화보장제도의 예를 들자면 우수영화로 선정된 영화를 만든 영화사는 쿼터제 방식으로 헐리우드의 영화를 수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당연히 흥행이 보장된 헐리우드의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영화사는 우수영화를 제작하여야 했다. 그리고 당시의 100% 우수 영화 선정이 보장된 작품들은 반공을 주제로 담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예술가의 취향이나 창작욕구 같은 것은 거대 산업 논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애니메이션 산업의 70~80년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던 중 하청작업 중심으로 성장했던 기존의 애니메이션 산업 군과 선을 그으며 독립애니메이션을 표방하는 작가들이 1990년대 초반 나타났다.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로 불리는 당시의 작가군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해왔더라면 아마도 기존의 산업군들과 좋은 라이벌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1990년 중반 헐리우드 영화인 라이온 킹과 주라기 공원의 성공으로 다시 한 번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국가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적인 관심은 문화 산업으로써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라이온 킹이 벌어들인 자본에 닿아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본에 대한 국가의 욕구에 의해 다시 한 번 애니메이션 진흥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하청업 중심의 산업군들은 무너져 내렸다. 그 과정은 링크를 통해.
또 그 과정에서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들 역시 무너져 내렸다. 그 과정은 링크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이 아직은 먹고 사는 데에서 자유롭긴 아직은 일렀던 것일까?
국가의 자본에 대한 욕구는 산업체의 욕구와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의 욕구와 완벽하게 일치하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산업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산업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렇게 자본을 좋아해 시행된 계획이었다면 시원하게 자본이라도 벌었으면 좋았겠지만 알다시피 그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었다.
그 원인은 바로 문화라고 하는 것의 특성 때문이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맨 처음 지적했듯이 개개인의 욕구들이 모여서 만든 거대 집합체이다. 그 중 많은 이의 욕구가 주류문화가 된다.
대중을 획일화 된 취향으로 이끌기엔 애니메이션 산업이 거대하지 못했고. 자본에 의해 개개인의 취향들은 묵살되었다.
우리가 독립 애니메이션을 이야기 할 때 독립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때 유일하게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 작품이 자본의 욕구에 의해 기획되었는가 아니면 작가의 취향에 의해 기획되었는가를 따질 수밖에 없다.
자본을 좋아하는 산업이나 국가에서는 개인의 취향에 의해 기획되었다면 자본과는 영영 상관이 없는 무언가가 완성될까봐 호들갑을 떨지만 그 개인이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개인의 취향과 대중의 취향이 맞닿을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본의 욕구에 의한 작품들이 대중의 사랑은 받지 못했다면 이제는 대중의 취향을 알아보는 방식을 바꾸어 대중의 기본 단위인 개개인의 욕구, 즉 창작 주체들의 취향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려가 되는 것은 독립애니메이션 내부의 문제이다.
독립애니메이션계가 이제는 어떤 것이 독립 애니메이션인지 그리고 앞으로 산업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이 차지해야 할 역활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자본이 산업을 지배하면서 대중의 취향을 읽는데 실패하였지만 놀랍게도 창작 당사자들의 욕구를 지배하는 데에는 성공해 버렸기 때문이다.
단편 제작 지원을 내는 창작자도 OSMU를 기반으로 기획한다는 슬픈 이야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독립애니메이션 창작 주체마저도 자본의 욕구에 완전히 먹혀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가져다준다.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의 몰락을 거울삼아 보았을 때 자본의 욕구에 저항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애니메이션 산업에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실제 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만든 유령만 남아있을 뿐이다.
독립애니메이션 내부에서 무엇이 독립 애니메이션인가? 또 앞으로 독립애니메이션은 산업에서 어떤 역할과 지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취향이 대중의 취향에 부합할 때 그것은 문화 산업이 된다.
산업의 욕구가 개인의 취향을 지배할 때 문화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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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 란 질문을 들었을 때 잘 모르겠다. 란 말 이외에는 나오지 않았서 나 개인의 생각이라도 정리해 볼 심산으로 말끔히 정리를 해보려고 했는데 정리가 되질 않는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정리에 도전을 해 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진짜 한번 의논을 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같이 한번 의논 해보실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