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영화제 트레일러와 돼지의 왕 제작 발표회를 겸한 무비위크 인터뷰. 사진과 함께 폭발을 언급하니 되게 비장해 보인다. 사실은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ㅎ
더보기
PIFF 트레일러 연출 &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 “언젠가 폭발할 날이 올 거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트레일러를 만들게 된 계기는?
글쎄.(웃음) 그냥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맡기자는 발상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님한테 추천받은 게 아닐까 싶다. 곽 대표님이 지금껏 내 작업을 주의 깊게 지켜봐 왔으니까.
-트레일러가 올해 퇴임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님의 트리뷰트 형식이라 들었다.
그렇다. 시놉시스 아이디어는 이창동 감독님이 주셨다. 영화제 기간에 김동호 위원장님이 되게 바쁘셔서 택배 스쿠터를 타고 부산을 왔다 갔다 하신단다. 그 모습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위원장님의 모습을 부산이라는 공간과 함께 역동적으로 표현해 봤다.
-부산국제영화제와의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없다.(웃음) 이상하게 영화제는 잘 안 가게 된다. 특히나 내 전작들은 대부분 연초에 완성되다 보니 부산에 갈 일이 없었다. 부산은 프리미어 영화가 중심이잖나. 다른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되다 보니 부산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동호 위원장님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나.
-부산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니 지금 준비 중인 첫 장편 얘기로 넘어가보자.(웃음) <돼지의 왕>은 어떤 이야기인가?
남자 둘이 주인공이다. 그 중 한 명이 아내를 목 졸라 죽이며 영화가 시작된다. 또 다른 한 명은 ‘찌질한’ 삶을 사는 대필 작가다. 이 둘은 중학교 동창인데, 어린 시절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그들은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주던 ‘철이’라는 친구를 회상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구조다.
-데모 예고편만 슬쩍 봐도 어둡고 세다. 미스터리한 구조에 폭력적인 애니메이션인 듯하다.
그렇다. 상당히 세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의 주제는 ‘영웅은 만들어진다’는 거다. 영웅도 보통 사람에 불과한데 주변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얘기다. 그가 특별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오히려 그를 떠받들던 사람들이 잔인해지는 과정이 슬프게 그려지기도 할 거다.
-양익준 감독과 배우 오정세가 목소리 출연한다.
이미 목소리 녹음을 끝냈다. 현재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작업 중이다.
-목소리 연기를 먼저 하고 그림을 그리나? 보통은 반대 아닌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낯선 작업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렇게 많이 한다. 목소리를 먼저 녹음해 놓으면 그림으로 디테일을 살려야 하니까 복잡해진다. 그런데 난 오히려 그림 디테일에 도움을 받을 것 같아서 이렇게 작업하게 됐다.
-양익준 감독과의 인연은?
알고 보면 <사랑은 단백질>에도 목소리 출연했다. 옛날에 영화제에서 만나서 친해지게 됐는데 그때 <돼지의 왕>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당시 <똥파리>(2009) 시나리오를 봤는데, 이렇게까지 잘될 줄 몰랐다. 엄청 힘들게 찍었거든. 양익준 감독이 그러더라. 인터뷰를 1만 번은 해야 사람들이 간신히 알게 된다고. <돼지의 왕> 인터뷰 1만 번 해야 한다.(웃음)
-독립 영화계 못지않게 애니메이션계도 척박하잖나. 제작비 모으는 데 힘겨웠다고 들었다.
사실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국내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잘 나오지 않는 데다, 나온다 해도 다 어린이용 아니면 판타지다. 게다가 ‘쎈’ 작품이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KT&G 상상마당에서 거의 전액을 지원받게 됐다.
-거긴 극장도 갖고 있지 않나. 개봉도 한꺼번에 해결했겠다.
그렇다. 그래도 더 규모 있게 개봉할 수 있도록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이제 투자는 해결됐고, 현 단계에서 골치 아픈 점은 뭔가?
내년 2월 개봉을 예상하고 있는데, 기간 내에 완성하는 거다. 만들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지금부터 이렇게 열심히 홍보도 하고(웃음) 데모 예고편도 미리 만들어놓았다. 관심을 모으기 위해 인터넷에 제작기도 올리고 있다.
-국내 관객들은 대부분 ‘애니메이션’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식의 밝고 아름다운 세계관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돼지의 왕>은 성인용 애니메이션인 데다 사실적인 극영화 스타일이다.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의 데이터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관객 시절 <돼지의 왕> 같은 이미지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적어도 내 욕구에는 충실한 작품으로 탄생될 것 같은데, 과연 이런 걸 좋아하는 관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도 같다.
-사실적인 이야기를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사실체의 그림과 실사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사람 사진을 찍어도 누가, 어떤 조명에서, 어떤 각도로 찍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지 않나. 하물며 그걸 그림으로 그린다고 생각해 보라. 2D가 가지는 영상적 쾌감이 분명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사실적으로 만들어도 결국 표현주의 영화처럼 느껴지게 되더라. 배경 하나에도 연출 의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사랑했나?
약간 ‘오덕후’ 스타일의 아이였다.(웃음) TV에서 방영되는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녹화해서 돌려 봤으니까. <원탁의 기사>를 너무 좋아했는데 캐릭터 이미지를 소장할 방법이 없어서 TV를 보며 따라 그리곤 했다.
-애니메이션을 잘 안 보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콘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1997)! 이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이 재미없을 수 있다. 하록 선장이 아무리 멋있다 한들 이미지를 실제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도 아닌 그가 왜 멋있는지 이해가 안 갈 거다. 그런데 콘 사토시의 영화는 그림을 이해 못해도 시나리오 자체로 충분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을 좀 본다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작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다. 오랫동안 다듬어져 완성된 그림체다. 이젠 지브리 스튜디오의 모든 캐릭터들은 ‘미야자키 하야오화’되어 있다. 워낙 표현력이 뛰어나다 보니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캐릭터의 깊이 있는 심리를 드러낸다. 이야기는 평가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림이 모든 결점을 채워준다.
-1990년대 중후반 국내 애니메이션계에도 붐이 일었지 않나. 왜 이렇게 척박해졌을까.
시장이 생기려다가 망가져버린 탓이 크다. <라이온 킹>(1994) 같은 해외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했다. 그런데 산업의 논리로 엉뚱한 데 투자를 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거지. 지금 <아바타>(2009)가 터지니까 국가가 3D에 투자 지원하고 있잖나. 똑같은 상황이다. 차라리 애니메이션계는 다 망가져서 마음이 편하다. 다시 처음부터 해나가면 되니까.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되나?
집계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최소 30~40억 원은 있어야 장편을 만들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기술력이 많이 발전해서 개인이 집에서 혼자 장편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홀로 작업하고 있는 감독들이 꽤 되는 듯하다. 언젠가 이 모든 게 한꺼번에 폭발할 때가 오지 않을까?
-<돼지의 왕>은 독립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독립’의 근거는 뭐라고 생각하나?
애니메이션은 유독 산업적 욕구가 강한 장르인 것 같다.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 팬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달려드니까. 다행인 점은 <돼지의 왕>에는 내 취향이 많이 들어갔다는 거다. 데뷔 감독 중에 자기 취향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런 의미에서 <돼지의 왕>은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연상호’라는 사람의 취향을 담은 작품이니 말이다.
무비위크 -김현민 기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