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스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스카이 크롤러.

전공투 세대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페트레이버, 공각 기동대, 인랑 등의 작품을 만들어 왔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만든 작품이 스카이 크롤러이다.

스카이 크롤러의 기본적인 설정은 이렇다.
전쟁 중의 이계. 이념에 의한 전쟁이라기보다 이권을 위한 전쟁이다. 전쟁의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 단지 전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권인 회사 간의 전쟁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 전쟁에 사용되고 있는 킬드렌이라고 하는 늙지 않는 젊은이 들이다. 이 젊은이들은 전쟁에 사용되고 죽어간다. 그리고 곧 그 죽은 자를 대신하여 그와 꼭 닮은 젊은이들이 새로 채워진다.

어른들의 게임의 세계를 극대화 시킨 전쟁이라고 하는 설정에 영원한 젊은이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은 이 작품을 한편의 우화로 만들어 준다.

이곳의 젊은이는 체제속의 부속으로써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소모된다. 그러면 또 다른 대체품이 그 자리를 채운다.

스카이 크롤러는 우화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인 쿠사나기는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상대편인 절대 이길 수 없는 보통 어른 파일럿 ‘티쳐’를 격추 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스스로를 부수고 싶어 한다.

그런 쿠사나기에게 칸나미는 말한다. "당신은 살아요. 뭔가 변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살아요."그리고 칸나미는 티쳐를 격추시키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실패한다. 그리고 또 모든 것이 반복된다.

체제를 부수기에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그래서 종종 우리 개인들은 절망한다.

그런 절망의 모습을 스카이크롤러는 전쟁과 킬드렌이라는 우화를 동원해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바뀌지 않는 체제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려 하는 개인들은 희생되고 또 모든 것이 반복된다.

하지만 스카이 크롤러에선 이런 절망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이는 굴레 속에 조금씩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다.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변화의 끝을 알 순 없지만 그런 작은 변화가 체제에 대항하는 개인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조금씩 변화하며 반복되는 하늘을 바라보는 쿠사나기의 마지막 모습이 가슴에 작은 울림을 준다.

쿠사나기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