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의 수학 선생님은 예뻤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 선생님은 스물 몇 살 정도 먹은 여자아이였지만 당시 나에게는 눈이 부신 우상이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용돈이 됐건 등록금이 됐건 성인이 되었단 증거로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 시간에 만나는 10대 소년들이 얼마나 힘든 노동이었겠냐 만은 그때야 그런 것은 다 제쳐놓고 그냥 그 예쁜 선생님이 좋았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이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학원을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지 피부 안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끊어 오르는지 고통스러웠다.
이제 다음 주면 영영 그 선생님은 못 보겠구나.
영영 못 보겠구나.
그 문장이 내 몸에 불을 질러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힘들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영영 못 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학원의 원장에게 그 선생님의 연락처를 물을 수 있고 그렇다면 언젠가 시간이 날 때 만날 수 있다.
그러자 내 맘속의 고통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수년 후 그 학원을 그만둔 지도 오래된 어느 날 그 학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 그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났다.
지금이라도 학원에 올라가면 그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찰나의 시간에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은 <그러기엔 너무 귀찮다>라는 문장 속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 직후 쓸쓸함이 밀려왔다.
정말로 이제는 그 선생님을 영영 못 볼 것이라는 것 때문에 쓸쓸한 게 아니었다. 그 당시 나를 고통스럽게 한 그 감정의 행방을 알 수 없어서였다.
사람은 늘 그런 식이다. 상황이 변하면 그것을 대하는 감정도 변화한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변화하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느낀 감정을 기억은 하되 느끼진 못 할 것이다.
언젠간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도 모를 만큼 나는 변할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상상도 못하는 자신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변화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쓸쓸한 미소를 지을망정 불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걸까, 원망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