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 두지만 예전에 <지옥, 두 개의 삶>을 만들 때 거의 2년 가까이 한달에 30만원 정도의 지원금으로 지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래도 가난하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집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월세가 얼마인데 한달에 30만원으로 산다는 게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어쨌든...
이제는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성공을 위해 한번쯤은 고생했노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몇몇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봐도 <내가 사실은 부자인줄 알지만 험한 아르바이트해봤다> 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어이구 얄미워.
내가 그들이 얄미운 것은 그것이 <나는 이 양극화 사회에서 정정당당히 일어섰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명장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느낀 가난이 진정한 가난이었는가를 되묻는 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을 알지 못할 것 이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고 생각을 얼어붙게 만들어 당장 내일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고 그런 지친 움직임 속에서도 여전히 끝도 없는 블랙홀 같은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는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한번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길에서 콩나물 파는 아줌마들이 참 이해가 안가..> <왜?> <솔직히 거기 앉아 하루 종일 팔아도 몇 천원 못 벌 텐데 나 같으면 차라리 집밖으로 안나가고 몇 천원을 안 쓸 텐데...>
맙소사.
부자들은 가난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모여 여행을 갈 때면 시장에 장을 보러가서 몇 천 원 하지 않는 음식 재료를 사며 몇 백 원 깎아 주세요. 라며 흥정을 한다. 그들에게는 가난은 놀이인 것이다.
그들은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설움이 쌓이다 싸여 분노로 뒤집어 지는 것이라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가난이란 스릴 있는 놀이인 것이다.
내가 그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한번쯤 경험해 봄 직한 재미있는 놀이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겐 스릴 넘치는 놀이터가 누구에겐 잔혹한 전쟁터라는 걸 인식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줄을 그어 놓고 이 금을 넘어가면 절벽이라고 가정을 하고 그 금 옆을 걸은 후 절벽 위를 걷는 사람을 안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게 힘들다면 <나는 부자여서 아무런 고생 없이 자랐습니다.>라고 말해다오.
그것도 힘들다면 재미삼아 물건 값을 깍지라도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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