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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CGLAND에 실리기로 했던 표제 이미지

2화 더미 애니메이션(Dummy Animation)의 새로운 발견

글: 김승인 (Studio DADAShow 프로듀서)


<지옥>을 제작했던 경험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로토스코핑 방식으로 제작하려고 했던 연상호 감독은 작지만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사실 늘 하던 방식이라 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하지만 로토스코핑이 보기엔 쉬워도 직접 진해하다 보면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거든요. 촬영 장소라던가, 화면 앵글이라던가 등등... 참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연감독은 <사랑은 단백질> 의 본작업(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앞서 이미 짜놓은 스토리보드를 다시 면밀히 검토했다. 좀 더 선명한 화질을 담아내기 위해 VX2000 디지털 캠코더도 빌려놓은 상태였다.

<지옥>의 로토스코핑 촬영은 단 하루 만에 끝냈었기 때문에 <사랑은 단백질>이라면 등장인물이 더 많아졌다고 하더라도 길게 잡아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모두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연감독은 호언 장담했다.

지금도 <지옥>을 보면 저걸 어떻게 완성했을까 스스로가 대견하게 생각되곤 해요. 많이 부족한 부분을 안고 시작했고 마무리했던 작품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랑은 단백질>은 <지옥>의 경험치로 본다면 초반 작업 세팅하는 부분은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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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토스코핑을 위한 촬영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스토리보드와 대사, 각 씬의 분위기를 검토했고 정리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대사 녹음 파일을 씬 별로 구분하여 다시 정리했고 연기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촬영을 하기로 한 4월 30일. 나는 카메라를 챙겨 들고 연감독 집으로 향했다. 연감독의 집은 수 많은 DVD와 화보집, 자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평소 애니메이션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애니메이션 쟁이 감독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물건들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촬영을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잠시 집 안을 정리해야 했다. 사실 촬영을 하기 위한 환경이나 시스템은 열악했지만 이곳에서 <지옥> 시리즈가 탄생했음을 생각한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건 쾌적한 환경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현명한 열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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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한 쪽에 놓여있던 컴퓨터에 배우들의 대사 웨이브(wave)파일을 카피해 놓고 한 씬 한 씬 재생해가며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열심히 연기를 하며 촬영에 임했다. 내가 카메라를 잡고 연감독이 모든 캐릭터를 연기했다. 원래 사람 동작의 작은 습관이나 패턴은 고유한 게 있어 한 사람이 모든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연감독이야 말로 <사랑은 단백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의 성격, 습관, 말투 등에 이미 정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저도 사실 수줍음도 많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배우들 대사 녹음할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캐릭터를 대신해 연기를 하고 있노라면 그런 제 성격은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네요. 하핫. 이번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호였습니다. 재호는 규정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 재호가 비교적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부분도 있고 키(key)를 쥐고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돼지 사장이나 닭 사장 캐릭터는 배우들이 녹음할 때 감정선을 잘 잡아줬기 때문에 비교적 쉬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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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로 작업하는 연감독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때도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농 짙은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지옥>과는 사뭇 다른 쉽지 않은 캐릭터들의 표현 때문에 전체 내용의 1/3도 마치지 못하고 연감독은 잠시 '촬영중단'을 외쳤다. 결국 당일 촬영분 소스를 편집하고 원동화 테스트를 해 본 후 재촬영을 하기로 했다.

5월 1일  KOCCA(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현재 작업 중인 스튜디오)에서 촬영 소스를 IEEE1394와 Vegas 프로그램을 이용해 컴퓨터로 옮기고 다시 After Effect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퀀스 파일로 출력을 했다. 촬영 이미지 파일을 프린트 출력한 후 트레이싱을 하던 연감독은 고민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 방법으로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려운 부분이 참 많군요." 로토스코핑 방식은 익숙하긴 했지만 이번 프로젝트에 사용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가령 캐릭터들이 책상에 앉아 있을 경우엔 책상의 높이, 각도가 맞아야 동화 트레이싱을 한 후 배경과 합성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소품과 캐릭터들의 화면 앵글에 맞춰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실제 소품을 준비해야 하고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지옥>의 경우엔 그런 소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동작을 추출할 수 있었지만 <사랑은 단백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던 대로 진행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익숙했던 제작방식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가장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새벽에 잠도 오지 않더군요. 그러던 중에 '그래! 이거다!'라고 할 만한 아이디어가 머리에 반짝 스쳐가더군요.

5월 8일 약간 상기된 얼굴로 연감독은 내게 말했다. "피디님, 이번 작품 제작방식을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네요. 제작방식의 이름도 정해놨습니다. '더미 애니메이션(Dummy Animation)'" 연감독과 나, 그리고 연찬흠 기술감독은 한자리에 앉아 새로운 제작방식에 대해 의논했다.

당시 우리는 메인 프로덕션에 돌입하기 전에 기술감독에게 3D로 배경을 만드는 일과 캐릭터 중 닭 사장 정도를 3D 더미로 만들 것을 주문했었다. <사랑은 단백질> 이야기의 80% 정도는 재호의 자취방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배경의 80%가 방 안 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 구조를 3D로 설정해 두면 손쉽게 카메라의 위치를 바꿀 수 있으니 레이아웃을 설정할 때 편리한 점이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사람 캐릭터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애니메이션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닭 사장의 경우 하체 등 사람이 연기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3D 더미를 만들어 놓기로 했었다. 연감독은 이 점에 착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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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닭 사장 외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3D 더미를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원화를 할 때 캐릭터의 턴어라운드 데이터가 있으면 작업이 편리하거든요. 그런데 3D 더미를 바로 애니메이팅을 해서 그 데이터로 원화로 그린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촬영할 때도 화면 앵글에 구애 받지 않고 아이-샷만으로 촬영한 후에 기술감독이 그 촬영소스를 보며 3D로 동작의 키(key)를 잡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그럼, 촬영이 쉬워지지 않겠어요?

더미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무조건 찬성할 수 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더미 애니메이션을 할 경우 기술감독에게 가중될 업무량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모델링은 시간 내에 해낸다고 해도 애니메이팅까지 한다는 건 무리일 듯 싶었다. 연감독도 그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하긴 했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일단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물론 기술감독의 작업속도가 빠르기도 했고 게다가 이미 촬영된 소스가 있었기 때문에 더미로 애니메이션을 하는 건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혼자서 무려 170 컷에 달하는 분량의 더미 애니메이션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완성해냈다. 촬영소스에 선녹음한 대사를 붙인 후 편집해서 기술감독에게 넘겨주는 건 내 몫이었는데 나중에는 기술감독 작업 속도가 워낙 빨라 내 마음이 급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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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이건 단편이건 기존 애니메이션 중에 이미 3D 더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어요. 하지만 원화를 그려내기 위해 작품 전 과정을 3D 더미로 애니메이션을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사랑은 단백질>이 처음이 되겠네요.

더미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① 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캐릭터 움직임 표현 가능
애니메이션 원동화 작업시간 절감
③ 캐릭터 움직임에 대한 최종 아웃풋 프리뷰 용이
④ 형태 변형, 타이밍 불일치, 입 셀 불일치 등의 문제점 최소화
⑤ 실촬영 소스가 3D 더미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 삭제 및 부족한 부분 첨가 가능
⑥ 2D와 3D의 장점만을 활용
등이 그것이다.

특히 ⑤번의 경우 로토스코핑 기법과 비교했을 때 아주 편리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로토스코핑은 촬영 후 앵글의 변화나 동작의 수정 등이 쉽지 않고 수정을 하려면 불가피하게 재촬영을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더미 애니메이션의 경우 3D 캐릭터의 즉각적인 수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⑥번의 경우 부연설명을 하자면 동작 관련한 부분은 3D로 표현하기가 2D보다는 편리하기 때문에 더미 애니메이션이 적합하고 표정 관련 부분은 3D보다 2D로 직접 해결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화 담당자들은 동작이나 형태에 대해 고민을 하기보다 사실적인 표정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보다 풍성한 연기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점 외에 촬영 후 3D 더미 제작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단점으로 거론될 수 있지만 실제로 작업을 진행해 본 결과 그 단점은 다른 많은 장점으로 인해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더미 애니메이션은 마치 영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Action과 Cut 사인을 보내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컨트롤하거나 OK 컷과 NG 컷을 바로 판단하는 과정도 닮아있다. 실촬영 소스를 더미 애니메이션으 로 재현하고 나면 연감독은 바로 체크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리테이크 지시를 내려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액션 연출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감독이 감독의 연출의도를 잘 파악하는 똑똑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를 만나는 게 중요하듯이 더미 애니메이션 역시 3D를 효율적으로 다루면서 감독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는 스태프가 무척 중요하다. 다행히 연찬흠 기술감독은 그런 부분에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줬고 작업방식이나 기술적 문제에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조언과 의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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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찬흠 기술감독

애니메이션은 시간과의 전쟁이다. 더미 애니메이션 기법은 시간에 쫓기는 감독과 애니메이터들에게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해줄 것이다. 하긴 그런 여유는 반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생기면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욕망하는 유전자가 그들 몸 안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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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월간 CGLAND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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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사랑은 단백질> 탄생과 준비


글: 김승인(STUDIO DADAShow 프로듀서)

<사랑은 단백질>의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는 다다쇼(DADAShow)라는 애니메이션, 만화 창작집단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고 연상호 감독은 이미 애니메이션 <지옥:part01>을 끝내고 <지옥:part02>를 기획 중에 있었다. 최규석 작가 역시 단편 만화 <공룡 둘리>로 세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는데 최규석 작가는 대학 때 작업한 단편들을 모아 <공룡 둘리>를 표제작으로 한 단편집이 출간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게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였고 그 단편집에는 <공룡 둘리>와 대학 때 단편 이외에도 신작 단편 하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최규석 작가는 단편집이 출간됨과 동시에 다다쇼 사무실을 찾아가 연상호 감독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줬고 연상호 감독은 비로소 최규석 작가의 단편집의 문을 여는 신작 단편 <사랑은 단백질>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후에 <사랑은 단백질>의 모든 캐릭터는 장편 <습지 생태보고서>에 그대로 등장하며 진화하게 된다.) 연상호 감독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 때 본 단편 <사랑은 단백질>은 상당히 충격이었습니다. 그 작품은 규석이가 그 동안 해왔던 공격적인 스토리 라인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지만 내용과 유머는 더욱 단단해져 있었거든요. - 연상호

연상호 감독은 최규석 작가에게 <지옥:part02>가 끝나면 <사랑은 단백질>을 애니메이션화 하길 제안했고 최규석 작가는 알듯 모를 듯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3월 5일
내가 <사랑은 단백질>을 처음 접한 뒤로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랑은 단백질> 애니메이션 기획이 2007년 문화컨텐츠진흥원의 스튜디오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지옥>을 만들던 때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사랑은 단백질>의 애니메이션 제작 진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시작인가. - 연상호

연상호 감독은 문화컨텐츠진흥원 스튜디오 제작지원작에 선정됨과 동시에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그간 1인 제작 방식으로 해왔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스태프를 구성해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스튜디오 작업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혼자서 작업하던 방식이 쉽게 바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는 연상호 감독은 일단 자신이 준비한 <사랑은 단백질> 기획에 맞춰 차근차근 스태프를 구성하기로 한다.

3월 15일
원작자인 규석이와도 <사랑은 단백질>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규석이는 애니메이션화를 위한 캐릭터 설정을 자신이 잡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규석이는 한겨레21 연재와 신작 준비를 하고 있어 그게 가능할까 싶다. 그런데 고맙게도 한달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니 일이 잘 풀리려는 예감마저 든다.

원작자가 직접 캐릭터 설정을 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원작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제작에 협조적이다 보니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져만 간다. -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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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만화가 - <사랑은 단백질> 원작자

이번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연상호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사운드였다. 대사부터 음악까지 사운드가 <사랑은 단백질>에 미치게 될 영향은 상당히 큰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이 실제적인 느낌이 나길 원했다.

저는 이번 작업에 굉장히 리얼한 연출법을 쓰고 싶었습니다. 판타지이긴 하지만 진짜 현실 같은 리얼한 움직임과 리얼한 상황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것이죠. - 연상호

만화의 대사는 지면에서 다뤄지기 때문에 함축적인 대사와 연출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옮길 때는 표현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연상호 감독은 모든 대사를 새로 써야만 했으며 연출의 느낌이 원작과 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새롭게 써진 대사가 주는 느낌과 만화의 함축적 대사가 주는 느낌은 동일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연상호

<사랑은 단백질>의 사운드와 음악은 <지옥:part01>과 <지옥:part02>의 사운드 감독을 담당했던 오윤석 감독이 다시 맡아주기로 했다.

3월 20일
이번 작업의 프로듀서인 김승인 PD와 함께 이번 작업의 사운드와 음악을 담당하기로 한 오윤석 감독님을 만나러 갔다. 오윤석 감독님은 감독이 원하는 바를 감독 자신 보다 더 잘 찾아내는 사운드 감독이라 생각한다. 그보다 더 뛰어난 사운드 감독이 있겠는가!!

오윤석 감독님은 나에게 이번 작업을 선 녹음 방식을 이용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하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품 연출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업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선 녹음을 하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애드립이 애니메이션에서 살아날 수 있을 것이고 애니메이션 역시 리얼한 연출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선녹음을 하자! - 연상호

배우 섭외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부분이다. 가령 직업 성우들은 시간 개념이 무척 철두철미해서 섭외가 되고 비용이 책정되는 순간 녹음 시간이 일정시간 초과되지 않기를 요구한다. 물론 정당한 요구임에는 틀림없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작업 공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중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있어서는 부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럴 경우 구체적인 디렉션을 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토로한다. 또한 성우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색과 연기 패턴이 일정부분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감독이 원하는 연출방향과 어긋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연상호 감독은 일단 직업 성우들을 섭외 대상에서 배제하고 드라마, 영화, 연극 쪽에서 크고 작은 활동들을 하고 있는 배우들을 섭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라고 해서 어려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죠. 연기자의 경우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상 본인의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절반 짜리 연기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애니메이션에 대한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섭외를 할 때마다 어떻게 설명을 하고 부탁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 연상호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직업 성우보다는 연기자들이 연출방향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인들을 통해 섭외를 하기 시작했다. 친분이 있는 경우엔 자연스럽게 그들의 목소리 및 성향을 떠올릴 수 있었던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엔 소개를 받은 후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또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적절한 배역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섭외를 진행해갔다.

3월 27일
주요 배역인 닭 사장과 돼지 사장은 40대 중반의 중년 남자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젊은 연기자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배역만큼은 진짜 40대 중년 남자의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했다. 닭 사장과 돼지 사장 배역에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주변에 아는 연기자들을 통해 섭외를 부탁했고 마침 <지옥:part02>의 재영 역을 했었던 이주영 씨가 최근창 선배와 이돈용 선배를 추천해 주었다.

이번에 소개 받은 두 분은 정말 40대 연기자... 아- 엄청 선배잖아! 그래도 작품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고민과 부담은 별 문제가 되지 않기 마련이다. 일단 이주영 씨에게 소개를 받은 최근창 선배와 전화 통화를 하고 시나리오를 보내주고 난 후 인터넷으로 최근창 선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연극계에서 관록이 붙은 베테랑 연기자였다. 시나리오를 보내 놓고 '거절하면 어쩌지...', '연락이 안 오면 어쩌지' 하며 고민 하던 중 최근창 선배에게 경복궁 근처에서 한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당일. 최근창 선배, 이돈용 선배와 함께 경복궁 앞 벤치에 앉았다. 최근창 선배는 내심 걱정하고 있던 내게 "시나리오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며 고맙게도 "꼭 출연하고 싶다"고 말해줬다. 게다가 이돈용 선배는 만화 <사랑은 단백질>를 이미 전에 읽어 봤다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들의 대화는 그때부터 일사 천리로 풀려갔다. 바람이 꽤 많이 불던 초 봄, 경복궁 벤치에서 우리는 <사랑은 단백질>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수다를 떨며 주고 받았다. 기쁘다. - 연상호

<사랑은 단백질>의 특이할 점은 더미(Dummy) 애니메이션과 선 녹음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인데 이는 중단편 애니메이션에 있어 주목할 만 하다. 더미 애니메이션은 다음 시간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텐데 간단히 말하면 3D 모델링을 활용한 2D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사랑은 단백질>의 선 녹음 방식을 D.O.V.A 애니메이션이라 명명했다. 연상호 감독의 해석에 따르면 "기존의 일반적인 선 녹음 방식이라는 개념보다 진일보한 방식"이라는 것인데 즉 "목소리 연기를 드로잉한다(Drawing of Voice Act)"는 것이다. 물론 선 녹음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성우 혹은 연기자들이 목소리를 통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표현해 내는 것이긴 하지만 D.O.V.A 애니메이션의 경우 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몸과 목소리 연기를 마치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드로잉 해 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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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V.A System이라 이름 붙여진 선녹음 방식

이렇듯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목소리만 연기하는 게 아닌 연기자들의 심성과 삶의 이력도 함께 투영되어야 비로소 감독이 원하는 리얼한, 실제적인 애니메이션 연출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창 씨, 이돈용 씨가 맡은 닭 사장, 돼지 사장 외에 <사랑은 단백질>에는 세 청년 재호, 홍찬, 경순 등 중요한 배역이 더 있는데 연상호 감독은 이 세 청년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줄 사람으로 미쟝센 영화제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독립영화 감독이자 배우인 양익준 씨와 영화배우 오정세 씨, 그리고 연극배우인 박진수 씨를 만나 섭외를 하게 되었다. 이들은 각각 재호, 홍찬, 경순의 캐릭터를 배정 받게 되면서 <사랑은 단백질> 주요 등장인물의 라인 업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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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주인공과 출연진 소개

4월 11일
우리는 문화컨텐츠 진흥원에 있는 작업실에서 녹음 전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고 대사 리딩을 위해 리허설을 가졌다. 원작자인 규석이도 리허설에 참가해 내가 놓치고 있던 각 캐릭터의 디테일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줬다.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의 리허설이 끝난 후 동태찌게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식사 중에도 배우들은 작품의 캐릭터와 감정, 내용 등에 대해 수없이 질문하며 작품과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이 정도 열정이라면 분명 완성도 높은 연기를 따낼 수 있다! - 연상호

녹음 전 리허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리얼하고 디테일한 작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연상호 감독은 실제 녹음을 하기 전 연기 디렉팅을 위해 그리고 각 캐릭터의 성격 구축을 위해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수 차례 역설했고 이에 따라 5명의 연기자들과 함께 한 리허설은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리허설이 끝난 후에도 각 연기자들에 대한 개별적 분석을 통해 애니메이션 캐릭터와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몇 차례 대사를 바꾸거나 어투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최대한 실제 인물에 가깝도록 수정하며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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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호 역 - 배우 양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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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사장 역 - 배우 최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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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 역 - 배우 오정세


4월 15일
드디어 녹음이 끝났다. 아침 8시에 시작한 녹음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애니메이션 작업공정 중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작업이 녹음인 것 같다. 정확한 감정을 뽑아내야 하지만 그것이 공식처럼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게다가 계속 NG가 나면 배우들은 지치기 마련이고 배우가 지치면 연기는 더욱 나오지 않는다.
 
이번 녹음을 할 때 나는 체면 차릴 것도 없이 온갖 몸짓 발짓을 섞어 직접 연기를 하며 디렉팅을 했다. 그리고 배우들도 이런 내 맘을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주었다.
 
아주 특이한 캐릭터인 재호 역을 맡은 익준이 형은 몇 번이나 목이 잠기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내 설명을 들으며 최선을 다해주었다. 결국 12시가 넘어서야 익준이 형의 연기를 마지막으로 녹음이 끝났다. 익준이 형은 정말 땀 범벅이 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주었다. 잔잔한 감성의 연기를 많이 해왔던 익준이 형이 정 반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재호 역을 연기하다니!

익준이 형에게 농담 삼아 말을 건넸다. "사랑은 단백질이 완성 되면 익준이 형의 연기변신에 모두 놀랄 거야"  -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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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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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석 사운드감독(좌) / 연상호 감독(우)

이제 녹음도 끝났다. 자! 이제 종이와 연필들과 지루한 싸움의 시작이다.
 

원문 출처: 월간 CGLAND 2007년 9월호



관련링크:
[인터뷰] 너희가 지옥을 아느냐?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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