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대학생을 위한 문화 생산자 캠프에서 특강 합니다.
자세한 정보와 신청은 이곳으로..
포스터의 강사 이름은 연수입과 인지도를 이름 크기로 전환하여 계급화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ㅎㅎ



 

한국의 문화 지원 정책은 성과주의에 만연되어 있다.


흔히들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과주의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인가?> 라고 반문 해오면 이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어진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지원 정책이 성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어있단 말인가?
_분명 맞는 말이지만 어쩐지 억울하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분명히... 하지만 딱히 할말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을 통해 그 해답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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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한국에서도 성공했을까?

국내 제작현실과 스타감독 탄생의 꿈 
_연상호  뉴스 한국 2007년 3월

세계적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적으로 보아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 이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 이후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일본 전체 영화계에서도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그의 스승이자 동료인 *‘다카하타 이사오’의 말처럼 보통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63년 ‘도에이동화’에서 *동화맨으로 애니메이션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작품을 거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플란다스의 개(1975, 즈이요 영상)> <엄마 찾아 삼천리(1976, 닙폰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1976, 닙폰 애니메이션)>의 *원화맨을 거쳐 <미래소년 코난(1978, 닙폰 애니메이션)>의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 데뷔를 했다.
이후 극장용 장편 <루팡 3세-카리오스트로 성(1979, 도쿄무비 신사)>으로 극장용 장편 감독 데뷔를 했고, 이후 지금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현 지브리 스튜디오 프로듀서)를 만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톱 크래프트)>를 만들면서 흥행과 작품성을 겸비한 전무후무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건 오랫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는 하야오 만의 그림체만 보더라도 ‘다카하타 이사오’의 초기 작품인 명작동화 시리즈(프란다스의 개, 빨간머리 앤 등)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분명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상업 애니메이션계에서 원화 작화인과 연출자로 활동하면서 쌓은 상업애니메이션에 대한 감각이 그의 창작 작품의 방향성을 잡아주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제작현실과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식 작품 세계의 첫 신호탄을 날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기까지를 돌아보자면, 일단 위에서도 말했듯이 하야오는 ‘도에이동화’에 동화맨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한국의 *OEM 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야오가 원화맨 생활을 시작한 시기부터는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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