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공공의 세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지원 정책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의 성과가 공공의 성취인지 개인의 성취인지를 구분해 본다면 그것이 정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 지원 정책은 여러 차례 이야기 해 왔지만 영웅주의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것의 성과가 어느 정도의 수치로 기록되는가에 심취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몇 십억을 지원해서 그것으로 인해 수백억의 해외의 투자를 이끌어 왔다고 하자. 그것은 과연 공공의 성과라 할 수 있는가? 그것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바로 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던 한 기업의 이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백억을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인들이 해택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택을 받는 것은 하나의 프로젝트일 뿐이다.
마치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만들고 노동자를 착취한다면 그것이 공공의 성과라 볼 수 있느냐 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공의 세금으로 단 한명의 개인의 이익을 만들어 낸다면 과연 그것이 올바른 성과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공공의 성과와 개인의 성과를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공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할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이 되어지는 공공의 성과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장은 지원정책을 받지 못하는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가능한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어야 한다. 수백억이 있어야 진입할수 있는 시장이 아니란 말이다.
공공이 참여할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또 1명의 100억의 성과보다. 100명의 1억의 성과를 문화정책은 우선 시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지원정책이다.
100명의 1억의 성과는 분명 시장을 만들 것이고 지원의 해택을 받지 못한 더 많은 개인들도 그 시장을 통해 활로를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명의 100억의 성과는 시장을 만들지 못한다. 또 더 많은 개인이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100억의 성과를 만드는 시장에 도달하기란 불가능 하다.
우리는 항상 개인의 성과와 공공의 성과를 혼돈해 왔다. 한명의 초인적인 영웅은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 사회를 바꾸는 건 그보다 훨씬 작은 영웅들이고 그들이 모여서 조그마한 성취를 해 나갈 때 공공의 성과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제서라도 한국의 문화정책은 공공의 성과를 위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물론 공공의 성과와 개인의 성과를 구분하여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문화와 사회의 발전은 없다.
-연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