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술의 핵심은 사람에게 있다.
필자가 다루고 있는 2D 그래픽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핵심 기술은 사람에게 있다.
2D애니메이션은 상업 애니메이션 영화 중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작업 기법이다.
기본적으로 투명한 셀룰로이드에 여러 장의 그림들을 그려 넣어 배경과 합성해 촬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2D 셀 방식이라고도 불리는 형식이다.
지금이야 셀룰로이드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컴퓨터로 스캔하여 만들기 때문에 2D 디지털 셀 방식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기술의 방식이야 셀룰로이드에 물감으로 채색하던 것이 컴퓨터로 스캔하여 컴퓨터로 채색하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지 그것이 기술의 발전이라고 말하긴 힘들 듯 하다.
다른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마찬가지로 2D애니메이션의 핵심은 바로 그림이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그 그림을 그리는 많은 사람의 기본적인 기술의 능력 향상이 필수적이다. 그 기본적인 기술 능력의 향상이란 배경을 그리기 위한 투시도법, 채색을 위한 색감의 사용 방법, 인체를 그리기 위한 해부학, 동화를 그리기 위한 타이밍 감각등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문제는 이런 습득하기 까다로운 기술들을 한두 명이 아닌 그 작업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고 것인데 이 부분이 애니메이션 산업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발전하는 까다로운 산업인 점이다.
이런 충분한 능력이 갖추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잘 그려! 잘 그려! 라고 말하며 채찍질 한다고 해서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필자가 <사랑은 단백질>이라고 하는 중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점은 이 부분이다.
충분한 월급을 주고 시간에 쫒기지 않으며 자기가 맡은 그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지만 스텝 개개인의 능력 향상이 이루어 질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제작비라고 하는 것은 항상 모자라게 주어지고 제작 스케줄은 여유 있다고 하기엔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그 동안 2D 애니메이션을 하며 연구했던 방법을 총 동원 하기로 한 것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적은 돈으로 빨리..그러면서도 높은 퀼리티로...또 그러면서 일하는 사람이 편하게...
2. 더미 애니메이션 (Dummy Animation)
2D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캐릭터를 움직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원화 와 2. 동화 이다
원화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움직임의 기본이 되는 동작. 키 프레임을 그리는 것을 말하고 동화라고 하는 것은 그려진 키 프레임의 중간 동작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사랑은 단백질 같은 경우는 캐릭터의 설정 자체가 삽화체, 즉 실사와 비슷한 형태이기 때문에 만화체 (과장이 심한 카툰의 느낌이 많이 나는 그림체) 보다 그리기가 힘들다. 또 조금만 형태가 어긋나도 캐릭터가 달라 보이기 때문에 작화하기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움직임이 많이 들어가는 동작이 많았기 때문에 원화가들은 하나의 원화를 그릴 때도 몇 번의 수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바로 더미 애니메이션이다.
더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것은 3D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인형을 만들 듯이 캐릭터를 만든 후 그것을 바탕으로 키 애니메이팅을 하는 것이다. 복잡한 형태이기 때문에 3D 더미를 이용해 키 프레임을 뽑아내면 원화가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원화를 작화하면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3D로 하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다. 3D프로그램은 복잡한 고정된 형태가 깔끔하게 출력이 되지만 단점으로는 복잡한 움직임. 예를 들자면 머리칼의 움직임 이라든가 옷 주름 같은 것 등을 하기엔 2D 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3D 더미를 이용해 큰 흐름의 움직임만 출력 해내고 세세한 표정 연기나 옷 주름 같은 부분은 2D 원화가 들이 공을 들여 작화하도록 한 것이다.
더미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① 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캐릭터 움직임 표현 가능
② 애니메이션 원 동화 작업시간 절감
③ 캐릭터 움직임에 대한 최종 아웃풋 프리뷰 용이
④ 형태 변형, 타이밍 불일치, 입 셀 불일치 등의 문제점 최소화
⑤ 실 촬영 소스가 3D 더미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 삭제 및 부족한 부분 첨가 가능
⑥ 2D와 3D의 장점만을 활용 등이 그것이다.
특히 ⑤번의 경우 더미 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자의 직관적인 움직임 연출이 가능하다. 2D로 연출을 하자면 러프 동화라도 촬영해 라인 테스트를 봐야 되고 그 부분에서 리테이크가 오면 다시 그리고 다시 라인 테스트를 찍는 과정을 겪어야 했지만 더미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이 부분이 훨씬 단축되어 연출자가 작업자에게 부담 가지지 않고 직관적인 연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⑥번의 경우 부연설명을 하자면 동작 관련한 부분은 3D로 표현하기가 2D보다는 편리하기 때문에 더미 애니메이션이 적합하고 표정 관련 부분은 3D보다 2D로 직접 해결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화 담당자들은 동작이나 형태에 대해 고민을 하기보다 사실적인 표정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보다 풍성한 연기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점 외에 촬영 후 3D 더미 제작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단점으로 거론될 수 있지만 실제로 작업을 진행해 본 결과 그 단점은 다른 많은 장점으로 인해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3. 배경 제작
배경 작화와 제작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작업을 하는 작업자의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 파트이다.
배경 작업자는 기본적인 회화 능력 외에도 움직이는 캐릭터의 동선이나 레이아웃 까지 신경 써서 조명과 색감을 만들어야 하므로 제 2의 연출자라 할만하다.
또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실제 사물에 기반을 한 아트웍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 역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투시 도법이다.
투시 도법은 일반인이라도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면서 작업자가 가장 애 먹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까다로운 부분을 현재에는 3D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
이미 더미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으로 인해 배경과 캐릭터 등의 레이아웃은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3D레이아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 3D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배경을 작화하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로 작업자의 역량에 따랐다.
<사랑은 단백질>의 배경 작업은 최대한 수작업 느낌이 나도록 작업하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연필선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3D 레이아웃으로 출력한 기본 레이아웃을 연필 선으로 따내면서 좀 더 세부적으로 스케치 작업을 했고 이를 스캔 받아 포토샵을 이용해 컬러링 하는 방식이었다.
선명한 이미지 라인에 색을 넣어 부드럽게 만드는 것과 자연스러운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채널 및 레이어 모드를 활용하는 등 첫 완성 배경을 만들어내는 데 적지 않은 노력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배경 작업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각 개체가 서로 반사에 서로의 색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배경에 있는 각 피사체가 서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곳이 하나의 공간이라고 하는 공간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2D 애니메이션 배경의 생명은 설득력 있는 공간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위에 기술한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을 느낌을 만들기 위함이다.
사랑은 단백질은 편집 시 애프터 이팩트로 줄 수 있는 이팩트를 최대한 줄인 채 전통적인 배경을 놓고 그 위에 채색된 동화를 얹어 놓는 전통적인 방식을 택했다.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드는 필요조건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3D입체 영화가 대세여서 이를 어서 연구해야 한다고 하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3D 입체 영화의 연구도 가치 있지만 이미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감동을 느끼지 않았는가. 관객이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눈앞에 튀어나오는 영화 뿐 아니라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이 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2D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볼 수 있고 만드는 사람도 노동 착취를 당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만들 수 있는지..그것을 연구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연상호: 애니메이션 감독, 스튜디오 다다쇼 대표 (www.studiodadashow.com)
1인 제작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 감독,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 <셀마의 단백질 커피>중 <사랑은 단백질> 감독.
좀 더 자세한 제작기 보기
제1화 <사랑은 단백질> 탄생과 준비
제2화 더미 애니메이션(Dummy Animation)의 새로운 발견
제3화 캐릭터에 생명력을, 배경에 활력을!
제4화 시간의 움직임을 연결하다.
제5화 컷과 컷 사이, 보이지 않는 예술
제6화 무언극에 소리를 건네다.
제7화 애들아, 우리... 통닭 시켜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