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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0 제5화 컷과 컷 사이, 보이지 않는 예술
  2. 2008/03/30 제4화 시간의 움직임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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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컷과 컷 사이, 보이지 않는 예술 - 편집


글: 김승인 (스튜디오 다다쇼 프로듀서)


I. 영상을 완성하는 힘, 편집

맛깔스러운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 아름다운 배경, 화려한 그래픽, 현란한 특수효과… 이 모든 게 애니메이션(영화)을 볼 만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임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보다 영상을 더 볼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아닌 편집이다. 

애니메이션에서의 편집은 영화와 달라서 최종 결과물을 가지고 편집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충분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편집은 대개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많은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스토리보드가 충실하지 못할 경우엔 애니메이션 제작기간 및 예산 집행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여러모로 스토리보드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편집의 많은 부분을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크고 작은 문제들은 컷들이 완성되고 계획된 순서대로 배열하면서도 발생하기 마련이라서 이 때 다시 편집의 묘(妙)를 발휘해 완성본을 만들어야 한다.

<사랑은 단백질>의 경우 최규석 작가의 원작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은 원작만화를 참고해 설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화는 지면 위에서 펼쳐지는 예술인 만큼 지면 위의 레이아웃, 대사, 의성어, 칸의 활용을 기본전제로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상물이기 때문에 만화의 모든 레이아웃을 고정된 화면 안에 새롭게 세팅하고 각 장면이 가져야 하는 시간(타이밍)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단백질>은 원작만화를 스토리보드로 옮기는 작업이 무척 중요했다.

연상호 감독은 스토리보드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은 단백질> 원작만화의 칸과 칸 사이는 애니메이션에서 컷과 컷으로 나뉘어졌고 말 풍선 안에 채워져 있던 문자들은 배우들의 녹음을 통해 대사로 재탄생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만화의 칸과 칸 사이를 지나고 있는 하얀 여백은 애니메이션의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 컷과 컷 사이를 흐르고 있는 시간(타이밍)으로 탈바꿈하였다.

연상호 감독은 만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를 파악한 후 각 캐릭터들의 동선을 재배치하고 대사를 재정비해 각 컷 마다 적절한 시간을 설정해 원작만화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애니메이션 버전의 <사랑은 단백질>을 만들어 냈다.

연상호: 만화의 호흡과 정서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만화는 페이지를 넘기며 흐름을 쫓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멈춰서 캐릭터, 대사를 한 컷 한 컷 천천히 자신의 호흡에 맞춰 읽어내잖아요? 애니메이션에서는 한 순간을 놓치면 바로 다음 컷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관객의 자유의지는 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말하는 대사, 표정, 정서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고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 호흡을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특별한 기교가 있다기보다 작품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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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보드는 다시 애니메틱스(스토리보드 릴)로 만들어졌는데 애니메틱스를 수 차례에 걸쳐 보고 또 보면서 느낌이 부족한 부분은 Premiere나 After Effect에서 컷을 자르고 붙이고 시간을 늘이고 줄이면서 적절한 타이밍, 그리고 컷들의 유기적 연결과 움직임을 찾는데 노력했다. 이 때 기계적인 계산에 의해서 편집이 이루어지는 부분도 많지만 확실한 판단과 좋은 타이밍은 연출자의 감각에 상당부분을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연 감독은 이런 방면으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좋은 애니메이션을 수십 번 씩 보는 습관이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연 감독의 이런 습관은 세밀한 감각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토리보드(혹은 애니메틱스)를 잘 만들어놨다고 할지라도 애니메이션 제작이 마무리 될 즈음엔 다른 부분이 꽤 많은 결과물을 손에 쥐게 마련이다. 그 중 하나는 타이밍에 대한 차이인데 이는 스토리보드에 원화, 동화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타이밍 감각에 대한 오차 문제가 대부분이다. 스토리보드 역시 만화와 마찬가지로 지면을 활용하여 분할된 프레임 안에 컷을 채워가는 방식이라서 각 컷의 길이(시간)를 연출자의 감각만으로 결과물과 똑같이 정확하게 정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경험이 풍부한 연출자의 경우 초, 프레임 단위까지 표시를 해두지만 대부분의 경우 초 단위, 혹은 10단위 프레임 정도로 정하게 된다. 이를 근거해 애니메틱스로 만들어 실제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게 되는고 이 때 정하게 되는 시간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부분 결과물과 일치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원화, 동화가 없는 상태에서는 컷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지거나 빠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을 더 명확히 결정하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이 보다 많이 들어간 애니메틱스가 필요했다.

연상호: 메인 프로덕션을 진행하기 전에 컷 별 동영상을 만들어 전체를 이어 붙여 확인해봐야 했어요. 더미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활용한다면 보통 스틸 이미지로 만들어진 애니메틱스보다 더 확실한 타이밍과 연출의 흐름을 잡아낼 수 있으니까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예산을 계획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관문인 셈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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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원화, 동화를 위한 준비로써 더미 애니메이션-컷 별 동영상을 만들기도 해야 했지만 감독의 작품에 대한 연출과 호흡을 정밀히 다듬기 위해 전체 분량에 해당하는 컷 별 동영상을 묶는 작업에 속도를 올려야 했다.

<사랑은 단백질> 초기 편집은 과장하자면 마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방식과도 같았다. 이미 스토리보드로 연출의 감을 잡은 연 감독은 더미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캐릭터들의 동선과 위치를 보며 "컷!"과 "오케이!"를 외쳤고 그렇게 결정된 컷들은 다시 대사 사운드를 얹혀 스토리보드에 표시된 각 컷의 길이대로 편집을 했다. 그런 후 연 감독은 다시 컷과 컷의 이음새는 물론 컷 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과 프레임의 간극, 호흡들을 검토하며 결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결정된 컷들은 각 스태프들의 손에 의해 원화, 동화, 배경, 칼라까지 완성된 후에도 최종 마스터링을 위해 다시 한 번 연 감독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초기에 편집방향이 결정되지 않으면 프로덕션 진행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 최종 편집을 할 때도 기준을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영화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 작품은 "스토리보드가 잘 나오면 작품의 50% 이상은 끝난 셈"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컷들이 속속 완성되고 있는 요즘, 연 감독은 매일매일 스토리보드, 애니메틱스, 완성된 컷들을 살펴보면서 작품의 정서, 흐름을 세밀하게 다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II. 프레임 안, 채워지는 시간

이 외에 각 컷들을 완성해가는 아주 작은 범주로서의 기술적인 편집도 있을 수 있겠는데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 17번 컷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17번 컷은 돼지 사장이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나가는 설정으로 원작만화에는 없는 컷인데 앞, 뒤 컷의 맥락과 주인공들의 감정선의 완급조절을 위해 연 감독이 창작해서 삽입한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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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없는 컷을 만들어 삽입하는 것이 어려운 건 아니죠. 중요한 것은 새롭게 만들어 삽입하는 컷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원작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관객들의 감정 흐름에 도움을 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늘 관객들의 감정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미지를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건 그 다음 일이죠. 그래서 늘 작품의 호흡과 흐름에 대해 고민합니다. 진척이 없을 때에는 혼자 끙끙 앓죠.
만화는 독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만화를 읽는 호흡을 조절할 수 있고 칸과 칸 사이의 빈 여백을 통해 독자 스스로가 상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시간 위에 얹혀진 이미지와 이야기를 가지고 진행되는 방식이므로 시간이 흘러 지나가고 나면 다시 돌이켜 볼 수 없기 때문에 관객이 상상해야 할 부분을 되도록이면 영상으로 재현해서 보여줘야 한다.

원작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든 오리지널 창작 애니메이션이든 감독(연출자)은 원래 계획했던 이야기에 따라 애니메이션의 컷과 프레임을 요리해서 의도하는 바를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때 컷과 프레임을 어떤 레서피를 가지고 요리하느냐는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 감독 역시 <사랑은 단백질>을 연출하면서 작품과 관객과의 소통에 대한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고, 고민 중이다.

17번 컷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돼지 사장이 스쿠터를 타고 배달하는 장면"이란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앞, 뒤 컷을 보면서 최적의 레이아웃을 설정한다. 배경 작업이 진행되고 돼지 사장과 스쿠터를 3D 더미 애니메이션으 로 제작한다. 후반작업에 들어갈 스쿠터 사운드 이펙트를 염두에 두고 스쿠터가 언제 골목 안으로 진입할 것인지, 빠져나가는 속도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를 정한다. 그리고 스쿠터로 인해 빛의 흐름과 반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한 후 최종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상호: 새로운 작업은 늘 즐겁습니다. 아니, 어떤 작업도 제겐 늘 즐거움을 줍니다. 공간을 살아 숨쉬게 만들고 캐릭터를 보내서 시간을 채운 후 그 시간을 다시 다듬는 작업은 큰 흐름을 스케치하든 디테일을 새기든 간에 재밌다는 거죠.
이로써 17번 컷은 원작만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던 프레임을 확보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돼지 사장이 스쿠터를 타고 배달 가며 주인공들 사이의 시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7번 컷과 같은 꽤 많은 양의 컷들이 연 감독에 의해 새롭게 창작되거나 재해석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컷들은 편집 프로그램에서 "Render" 키를 누르기 전까지 프레임 단위로 쪼개져 잘려나가거나 다시 붙여지거나 하면서 끊임없이 최적 타이밍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과의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애니메이션의 컷과 컷,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는 매 순간 애니메이터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무한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원문 출처 : 월간 CGLAND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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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동화 및 3D BG, Color

글: 김승인 (스튜디오 다다쇼 프로듀서)


시간의 움직임을 연결하다.

원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랜 시간 속에서 열정과 애정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던 김창수, 장진열 두 사람과 실력과 뚝심으로 이제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을 발산하려고 하는 최재훈 까지 세 사람은 정해진 시간 내에 최선의 퀄리티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들이 그려낸 원화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동화를 내부 인력으로 구성해 진행하고 싶어했다.

연 상호: 이번 캐릭터들은 그려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서 외주로 진행할 경우 의사소통이 바로바로 되지 않으면 작업하는 사람이나 관리 감독하는 사람 모두 지칠 것 같아요. 게다가 전 진행되는 과정을 계속 지켜봐야 안심을 하는 편이라서...
 
물론 나 역시 연 감독의 생각에 동의한다. 작업과 관련된 소통, 시간 및 일정 관리, 퀄리티의 확보 등을 생각하면 동화 작업은 내부에서 진행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현실은 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동화팀을 내부 인력으로 구성할 공간, 장비가 확보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외주업체를 선택해야만 했다. 마침 동화/칼라 외주업체인 e-grim을 소개 받게 되었는데 정해진 예산 때문에 서로 비용을 조정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쉽게 이야기가 풀렸다. 서로의 조건에 대해서는 조금씩 양보해가며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사랑은 단백질>의 경우 전체 동화 매수가 대략 14,000매 정도로 예상이 되었다. 여기에 한 컷 당 들어가는 인물들이 많을 경우 개별 작화를 해야 하니 실제로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매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우리는 e-grim과 상의 하에 스캔, 라인테스트, 동화, 채색, 디지털 효과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맡기기로 하며 동화 매수를 최소화하는데 신경을 썼다.

<사랑은 단백질>의 동화 매수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봤을 때 거의 극장판에 육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컷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는 연상호 감독이 매 컷마다 캐릭터들의 연기와 내용의 흐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며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단백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의 흐름인데 그걸 연출하고 표현하려다 보니 매 장면에서 캐릭터들이 희로애락을 표출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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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상호: <사랑은 단백질>과 같은 작품에서 중요한 건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배치해 놓느냐죠. 이같은 작품에서 액션의 크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의 표정, 손동작, 고개의 움직임 등 미세하지만 그들의 감정이 드러날 수 있는 연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것 때문에 동화 작업자들을 괴롭게 하긴 했지만요.

연 감독의 말처럼 <사랑은 단백질>의 연출방식은 그대로 원화와 동화 작업에 반영이 되어 작업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었다. 원화는 그나마 수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동화 작업자들은 각 캐릭터들의 작은 동작, 몸과 얼굴 표정의 형태를 유지하며 초당 24프레임을 그려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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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홍찬' 캐릭터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사랑은 단백질>의 캐릭터들은 그리기가 참 까다로운 편인데 e-grim에서도 역시 처음 동화 테스트를 할 때 형태가 연 감독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 캐릭터가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고 별 무리 없이 진행이 될 즈음엔 미묘한 움직임을 계속 그려내야 하는 것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 시도해보지 않은 여러 방법들을 실현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분명 좋은 결과로 노력에 대한 대가를 보답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화 작업자들은 보통의 경우 동작이 큰 액션장면이나 몸 전체를 움직이는 장면들이 많을 경우 동화 작업을 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고 하는데 <사랑은 단백질>은 몸을 움직이는 폭이 무척 작은 반면에 표정과 같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장면들이 많아 동화 작업을 하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시피 한 똑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그리는 셈이 되어서 지루하기도 할 테고 조금이라도 선이 틀려지면 바로 리테이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작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e-grim 은 동화/칼라 외주업체라서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작업자들이 <사랑은 단백질> 동화를 무척 부담스러워해서 기피하는 현상까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그림자 구분선도 한 몫을 했는데 가령 일반 애니메이션의 경우 색 지정은 2단계로 해서 원래의 색과 그림자 색 두 가지로 나누어 진행한다. 그런데 <사랑은 단백질>의 경우 모든 장면에 원래의 색, 그림자 색에 하일라이트까지 첨가했으니 그 구분선 중에 어느 한쪽이라도 위치를 벗어나게 되면 리테이크가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 발주를 주는 쪽이나 일을 받는 쪽이나 모두 꼼꼼히 확인해야만 해서 신경이 몇 배 더 쓰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럴 때는 캐릭터 형태 및 그림자, 하일라이트 등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데이터를 준비해 두고 있어야만 작업 지시와 확인과정을 포함한 전 공정에서 문제가 최소화 할 수 있다.

연 상호: 처음에 조금 욕심을 부린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퀄리티를 높여 정말 좋은 그림을 뽑아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림자 부분을 너무 복잡하게 설정한 걸 조금은 후회하고 있어요. 욕심이 과했다 싶었죠. 오히려 그림자와 하일라이트에 집중되는 시간과 노력을 줄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에 드러난 문제점은 차기작에서 반드시 만회할 겁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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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단백질>의 주된 배경은 반지하 자취방이다. 반지하 자취방이란 배경설정은 배경 작업 진행에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안고 있었는데 장점은 공간의 변화가 많지 않다 보니 방 배경에 필요한 모든 소품들을 3D로 설계 및 설정한 후 원하는 레이아웃을 손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고 단점은 공간의 제한 때문에 작품의 흐름이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고 똑같은 공간 내에 다른 빛의 표현을 하는 게 무척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폭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연찬흠 기술감독은 원작에 근거해 자취방의 전체 구조를 설정했다.(연재 2화 참고) 3D로 설정된 배경은 이미지로 출력된 후 정현욱 배경감독에게 넘어가 선 및 칼라 작업이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전선 한 가닥조차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만화 속에서 산발적으로 보이는 배경의 모든 소도구를 하나로 조합해 3D 프로그램 안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그 가상의 공간을 다시 현실세계로 가져오는 작업은 손에 잡힐 듯한,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배경을 만들어 냈고 그로 인해 캐릭터들도 그 안에서 더욱 생기를 띄게 되었다.

연상호: 3D로 설정한 배경과 만화에서 보이는 배경의 느낌을 일치시키는 게 중요했어요. 작업의 효율성을 고려해 3D로 배경 설정을 했지만 최종 결과물은 만화에서 봤던 이미지의 발전된 형태여야 했거든요. 3D지만 3D가 아닌 느낌, 게다가 3D로 작업한 결과물은 어떻게 해도 기계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프린트 출력한 3D 이미지 위에 연필로 다시 선을 따고 스캔을 받은 후 칼라 작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광각 앵글이었는데요. 결국 적절한 방법을 찾긴 했지만 작업 초기엔 3D 공간 안에서 카메라를 바꿔가며 앵글을 설정해도 만화에서 보던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의 광각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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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로 추출한 이미지를 다시 라이트박스 위에서 연필로 외곽선을 따내고 그걸 다시 스캔 받아 채색하는 과정은 언뜻 보면 작업공정이 많아져 짐짓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최대한 손 맛이 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카툰 렌더링이 아니라 작업자의 손으로 다시 재가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손으로 빚어낸 배경 속에 3D 가상공간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분명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현욱 배경감독은 배경에 색을 입혀가며 컨셉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가 가장 힘들다고 고백했다. 만화가 칼라로 작업된 것이긴 했지만 단순히 스포이드로 색을 추출해 입힌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와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트리지는 않되 새로운 창작물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화 안에 있던 빛을 다시 재가공하고 만화 안에 있던 공간의 기울기를 재설정하는 과정은 만화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과도 같았다.

캐릭터의 칼라도 마찬가지였는데 지면으로 마주하던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하며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으로 재탄생 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건 캐릭터의 흐트러짐 없는 형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칼라 설정이었다. 그림자의 크기, 얼굴의 홍조, 옷의 칼라들이 배경과 마찬가지로 만화를 보듯 자연스럽지만 그 자체로 창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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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상호: 처음에는 배경 칼라를 어떻게 설정해도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규석이와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원작이 눈 앞에 있고, 데이터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번 작품 배경 설정에서 신경을 많이 썼던 건 칼라의 배치보다도 빛의 흐름이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하게 보던 빛의 흐름이 아닌 저희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빛, 만화 속의 빛을 배경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했습니다.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한 <지옥>의 연상호 감독은 <사랑은 단백질>에서 진일보하고 있다. 중단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넘어 전작의 문제점을 해결해가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작업 공정과 방법을 찾아 스스로 변태(變態) 중이다. 

<사랑은 단백질>은 만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칼라와 공간의 활용을 보여줄 것이다.
 



원문 출처: 월간 CGLAND 2007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