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움직임은 이미 몇몇 애니메이션 대학의 졸업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이전의 영화제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졸업 작품에서 작가(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성향을 대변하고 있는 장르 애니메이션으로 경향이 바뀌며 심심치 않게 제작, 발표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미 대중과의 소통을 하고 있던 플래시 애니메이터들은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제작하고 배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립애니메이션 계는 이런 고민들의 틀을 확장해 장르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하는 창작자와 독립적으로 제작과 배급을 하고 있는 플래시 애니메이터, 자신이 성향을 장르화하고 있는 작가들과의 연대를 주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독립애니메이션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다양화하고 독립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가늠해 보는 고민의 시작을 열어줄 것입니다.
장편애니메이션, 선택이 아니다
현재 수많은 독립애니메이터들의 화두는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많은 독립애니메이터가 장편을 기획하고 있고 장편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좋다, 나쁘다’로 구분되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같은 시도가 작가의 선택사항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독립애니메이터들은 직업인으로서의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독립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장르가 직접적으로 얻고 있는 수익이 없고 배급을 할 수 있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인터넷(UCC), DMB, 케이블 채널 등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매체는 늘어났지만 결국 그 안에 산업적인 방식으로써 독립 애니메이션이 자리매김했던 예는 지금까지 찾아 볼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유일한 배급 방식이라 할 수 있는 극장’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배급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그보다 앞선 더 큰 문제는 기획하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한 작가가 독립애니메이터 시절부터 해왔던 ‘작가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건 더욱 힘들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행위가 독립애니메이션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독립애니메이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좀 더 본질적이고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 가지를 예를 들자면,
1. 창작 노동자로서의 애니메이터
가령 한 인터넷 매체에서 작품을 상영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작품을 상영하는 매체에서 작가에게 적정한 상영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상영료 지급을 하는 매체는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진보적 성향이라고 불리는 한 인터넷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상영료에 대한 지불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저작권을 대중과 공유하는 형식인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을 적용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부분은 진보주의 성향의 개념에서 나온 카피레프트(copyleft)의 개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피 레프트 개념은 카피라이트(copyright)의 반대 개념으로써(현재 저작권법에 의하면 작가 사후 70년 까지 저작권이 보호됨) 작품을 만든 작가가 죽은 후에도 저작권이 보호되며 저작권 말소가 되기 전까지 저작물로 인해 발생한 이익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은 부당한 이익이다’라는 측면으로 접근하여 생긴 개념입니다. 이런 개념들이 진화하며 마치 예술가들은 상업성을 추구하면 안 되는 것처럼, 혹은 돈을 밝히는 예술가는 저열한 예술가인 것처럼 보는 이상한 시선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사회를 떠나 산 속에서 수행을 하는 도인이 아닌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하는 창작노동자로 봐야합니다. 현재 독립애니메이터는 부당 이득을 취하는 건 고사하고 한 명의 노동자로써 잘못된 시선, 개념, 열악한 시스템으로 인해 금전적, 정신적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예술계와 학계는 이들 창작 노동자인 예술가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색해야 하고 예술가와 저작물에 대한 지속적인 개념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2. 독립애니메이션의 기획을 넓혀라
독립애니메이션의 효과적인 제작과 배급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작품을 기획할 때부터 작품배급이 될 매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DMB로 배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을 만들 때 분명히 DMB 시장의 단가와 관객층을 고려하여 관객과의 소통하는 효과적인 방식을 결정하고 작품을 기획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작품의 성향을 상업적으로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작품을 배급한다는 목표지점을 설정하자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제작할 때 매체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만들어 질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3. 독립애니메이터, 소규모 연대가 필요하다
현재 독립 애니메이션 등의 중단편 영상물을 상영할 수 있는 매체에서 지불되고 있는 단가를 고려해 보았을 때 비교적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 혹은 노동력과 기술력이 더 많이 요구되어야 하는 애니메이션은 제작비 회수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기획조차도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퀄리티, 노동기술집약적 애니메이션 작품 만들고자 하는 애니메이터들은 분명 있겠지만 위와 같은 제작비 회수 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매체로만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결국 위와 같은 성향의 애니메이션은 어느 정도의 자본을 가진 제작사 및 배급사를 통해 제작과 배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의 러닝타임이 일정량을 보장해야만 하는 현실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특징상 독립제작 방식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독립애니메이터의 소규모의 연대가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장편을 만들기 위한 옴니버스 상영기획이 이루어진다거나 독립애니메이터들이 하나의 색깔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3-5편으로 나누어진 장편 옴니버스 제작기획을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와 같이 독립애니메이터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고 이런 연대의식이 현재 암울한 독립애니메이션 계를 뚫고 나가기 위한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4.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정체성과 비평문화를 가져야 한다.
독립애니메이션 협회가 문을 연지도 벌써 3년이 되어 가는데 여전히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냥 ‘흐름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독립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다‘라는 생각만 가지고는 현재의 상황을 헤쳐 나가기 힘듭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독립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독립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왜 그런 정체성이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독립애니메이션 협회가 해야 할 몫입니다.
또한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평문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작품 자체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고 작품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키며 작가들의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 비평문화는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개별 작품뿐만이 아니라 독립애니메이션 전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도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에게 작품을 보게 하기 위해 단순히 작품을 많이 노출시키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는 관객이 찾아와 작품을 보게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비평문화를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비평을 통해 관객에게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저렇게 욕을 먹나' 혹은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저렇게 칭찬을 듣나' 라는 관람 욕구를 키워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작품에 대한 비평을 접하고 그를 통해 작품을 직접 감상한 소감들이 모여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은 담론들이 모여 ‘독립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이름이 뜬구름이 아닌 하나의 문화예술장르로 자리매김하면서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토록 꿈꾸던 이른바 문화예술 산업으로써의 독립애니메이션이 꽃 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원정책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겠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외국 독립애니메이터들이 부러워할 만큼 수많은 애니메이션 지원정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원정책들은 대개가 한 명의 ‘천재’를 발굴해내거나 한 편의 ‘대박작품’을 키워내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한국독립애니메이션 계 역시 ‘천재’와 ‘대박작품’을 기다려왔었습니다. 하지만 천재는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는 게 아니며 그 천재가 모든 독립애니메이션의 문제점들을 단번에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 문화예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거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건 한 명의 천재적인 예술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재라는 존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토양을 가진 좋은 흙에서 자연스럽게 발굴되어지고 커나가는 것입니다. 토양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개선을 하지 않고 그 토양에서 천재적 예술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이 외계인이 나타나 지구를 구원하길 바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국의 애니메이션 지원 정책은 지금까지 분명 하나의 스타를 키우기 위해 집중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지원정책은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함과 동시에 그 작품을 소화 할 수 있는 시장 형성에 집중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시장만 갖추어 진다면 스타는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표현한 만화작가의 글(원문)을 소개하며 발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투정
돈이나 지략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안 되는 대표적인 것이 문화다. 문화는 삶에서 자연스레 잉태되고 튀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 것들 중에 일부가 돈이 되고 국위를 선양한다. 산을 가꾸면 잡초도 나고 거목도 난다. 그것들이 서로를 살게 만든다. 목재 얻겠다고 큰 나무만 키우면 산나물이 안 자란다.
이노무 세상은 껀수 하나 건져 보겠다고 허허벌판에 묘목 하나 심어 놓고 물 주고 비료 주고 단 맛 나는 과실 언제 열리나 눈깔 빠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말라 죽으면 안되나 보다 하고 돌아설 게다. 인간들이 그렇게 얄팍하다.
"눈깔을 크게 그려야 서양인들이 친근감을 느껴서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있다." "아니다. 눈깔을 작게 그려야 한국적인 것이고,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백날 작전 짜봐라.
우리가 언제 양놈들한테 멕일라고 김치 담그고, 양놈들 춤추라고 풍악을 울렸던가?
차고 넘치다 보면 당신들 좋아하는 "세계적인 문화상품", 70년동안 지적재산권으로 외화벌이하는 그런 거 자연스럽게 나온다. 한 구멍에 비료 주고 물 준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럼 뭐 하면 되냐고?
산을 가꿔야지.
애들 좀 놀게 놔두고, 공부 못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여유를 갖게 해주고,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그런 기쁨.... 그런 걸 주면 된다. 작품도 교재로 보는 세상에서 무슨 작품이 나오겠냐?
그래서 어쩌라고?
뻔하잖아. 사회보장이나 강화하란 소리다. 그게 아니면 당신들 좋아하는 그 '공정한 경쟁'만이라도 되게 만들어라. 한방에 쉽게 먹을 생각들 마시고....
by 최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