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뒤져 본 결과 한국에도 대단한 감독이 있었다.
1967년 한국에서 최초로 <홍길동> 이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신동헌 감독이었다.
<이거 대단한걸!>
<홍길동>이라는 작품은 흥행에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와서 당시 30만 명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흥행기록을 남겼고 그것도 모자라서 같은 해 말 <호피와 차돌바위>라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또 한번의 흥행 신화를 썼다.
<이 사람 밑에 들어간다면 분명 내 꿈을 펼칠 수 있을 거야! 일단 홍길동이라는 작품부터 한번 보자!>
그런데 이런... <홍길동>이라는 작품은 이미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당시 필름으로 밀짚모자를 장식하는 게 대 유행이어서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홍길동은 더 이상 원본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신동헌 감독은 제작 기일이 이틀 넘어갔다는 이유로 작품에 대한 개런티를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제작할 때 제작비가 모자라 직접 투자한 투자액조차도 돌려받지 못한 채 빛만 생겨버려 그 이후 창작 애니메이션을 더 이상 제작 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하야오는 그 정도에 실망할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에도 원화나 동화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외국의 일을 하청 받아 작업하는 회사는 남아있었다.
그렇게 하청 회사에 들어간 하야오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쳤다.
자신이 그린 원화가 완성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 외국의 하청 작업을 맡아서 하는 회사는 외국 회사의 OK사인만 끝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게다가 그린 매수대로 임금을 주는 방식...그것도 적은 임금이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그림이 보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찾아보기는커녕 작품의 내용조차도 파악하기 힘든 환경 이었다. 게다가 하루하루 더 많은 그림을 그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나마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달려라 하니>, <머털 도사> 같은 작품이 만들어져서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한 반응을 알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방송국에서 그런 작품을 통 기획하질 않는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빨강머리 앤>.. 수많이 많은 작품이 TV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하야오는 그곳에서 일을 했다면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지 어떤 움직임을 그려야 감동을 받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겠는가..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야오는 어서 자신이 기획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다. 몇 년째 구상하던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야오가 속해있는 원화 팀을 이끄는 원화감독에게 슬며시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노라고 얘기를 꺼내 보았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야 요즘 방송국 TV시리즈 편당 단가가 얼만 줄이나 아냐? 1000만원이야 그 돈으로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같은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밖에 못 만들어 알아?>
하야오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해내고 말거에요. 그 돈만 있어도 제 열정으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기획 팀장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이렇게 만난 기획 팀장은 <미래소년 코난>의 기획서를 보곤 한숨을 쉰다.
<맙소사. 인류가 거의 멸망한 미래 이야기라고? 아이들에게 밝고 명랑한 것만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이걸 기획이라고 가지고 왔어? 어이구 이 포비라는 캐릭터는 담배 피는 장면도 나오네. 주인공이라는 놈은 어른들에게 작살을 겨누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기관총을 쏜다고? 네가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하야오는 그 회사를 미련 없이 나왔다. 그렇게 하청 원화만 그리다가는 <미래소년 코난>같은 시장을 모르는 작품밖에 기획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렇게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대학에 들어갔다.
애니메이션 대학은 이상한 곳이었다. 애니메이션과 대학의 교수들은 애니메이션을 해본 적이라곤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교수들의 이력을 아무리 들춰봐도 애니메이션을 해본 경력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한두 편 만들어 보거나 일러스트레이션 경력이 있거나 서양화과 출신..엥 컴퓨터 공학과?
<아냐 아냐.. 교수님들에게 의심을 가져선 안 되지... 분명 뭔가가 있을 거야.>
하지만 대학에서도 하야오가 원하는 작품은 만들 길이 없었다.
졸업 작품 기획은 번번이 교수들에게 막혔다. 교수들은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해외영화제에 상을 탈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기를 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건 분명 대중과 같이 호흡할 그런 대중적 작품인데 교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하야오는 재능이 남다른 학생이어서 교수의 말을 이해하고 그런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야오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만든 단편은 해외에서도 몇 개의 상을 타왔다. 게다가 하야오는 부지런하게도 이미 다음 작품을 기획한 상태였다.
<미래소년 코난>은 TV시리즈라 한국 실정에 맞지 않으니 이제 극장용이다!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기획했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자!>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니 이미 애니메이션 투자자는 시장을 떠난 상황이었다. 몇 년 전에 1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야심에 찬 프로젝트가 망한 이후로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국가에서 지원하는 지원제도 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몇 개의 상을 탄 지라 어렵지만 지원제도를 담당하는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하야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기획서를 내밀었다. 지원제도를 담당하는 직원은 한숨을 쉬며 하야오에게 말했다.
<하야오씨 이런 기획은 누구도 지원해주지 않아요. 지금은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시대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캐릭터 상품도 만들고 게임도 만들고 애니메이션은 그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요. 당신이 가져온 나우시카를 한번 보세요. 캐릭터 상품은커녕 벌레들만 잔뜩 나오고 게다가 총 쏘고 죽이고..그리고 시대 배경이 언제라고요? 세계가 멸망한 시점? 지금 장난 합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동글동글한 캐릭터가 나오는 가족애니메이션이라고요.>
하야오는 야심에 차게 기획한 두 개의 기획안이 물거품이 되자 절망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내수시장은 존재 하지 않는데 그런 지원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발 딛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은 작품이 무슨 원 소스 멀티 유즈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현실 탓하지 말고 외국의 누구처럼 신화를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패기가 없어!>
오랜만에 만난 증권가의 친구와 하야오는 소주를 한잔 한다.
<난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왜 사람들은 한 작품에다가 100억 정도를 투자를 하고 그게 망하면 애니메이션은 안 되는 산업이다. 그렇게 단정 내리냔 말이야.. 그렇게 한두 작품에 몇 백억을 때려 넣을 거면 한 10억원 규모의 작품을 여러 개 만들면 될 것 아니냐고 그러면 분명히 내수 시장이라는 게 형성이 되고 그렇게 되면 분명 애니메이션 산업도 자생력을 가질 텐데...>
<야, 이 순진한 친구야 요즘의 산업 논리는 그런 게 아니야 10억 투자에서 20억 번다? 투자자들이 노리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100억을 투자해서 1000억을 벌고 싶어 하지... 지금의 산업은 장사가 아냐. 도박이라고 도박. 도박을 해서 일확천금 하고 싶어 하는 것..너희 판이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일걸? 하루아침에 천재가 등장하길 바라고 그 천재에게 투자해서 일확천금하는 것...그게 한국의 산업 논리라고...>
-연상호: 애니메이션 감독. 스튜디오 다다쇼 대표 (www.studiodadashow.com)
1인 제작 중편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 감독 /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 <셀마의 단백질 커피>중 <사랑은 단백질> 감독 /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제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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