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유감이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대학들은 90년대 국가적 애니메이션 장려 정책에 의해 기아급수 적으로 생겨난 애니메이션과에 교수들을 맞춰 넣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력있는 기획자, 감독 중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서 학사학위를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원화 감독 기획자들은 실무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하청 동화 작업부터 착실히 경력을 쌓아가며 감독이 되거나 기획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학력자들이었다.
이들에게서 우주의 원더키디 같은 명작 애니메이션의 기획이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소위 대학물도 못 먹은 사람에게 대학생을 가르치라고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대학들은 교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애니메이션에 발만 담가본 적이 있는 화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영상 예술가들이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이 과정에서 영 아쉬운 것은 이른바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로 불리는 집단이었다.
하청작업에서 발전해 온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쪽과는 선을 그으며 창작 혹은 예술로써의 애니메이션을 지향하며 작품을 생산해오던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들은 대부분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였다. 그들은 야심차게 한국 애니메이션에게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고자 했고 아마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 했더라면 아마도 하청 기반의 애니메이션 산업군과 좋은 라이벌 관계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가의 애니메이션 팽창 정책의 일환인 애니메이션 학과의 개설속에서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는 교수로 삼기 아주 좋은 인력군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을까 싶다. 호기 좋게 애니메이션계에 뛰어들었지만 그 일이 직업이 되기 위해선 너무나 험난한 길이었다. 아마도 지금 꼭 내 나이 때의 배고프고 인정받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교수라는 직업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겠는가.
독립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직업이 별난 직업으로 소개되고 남들에 인정받지 못하던 그 시절, 이제 내일 하루아침이면 교수님 소리를 주변사람들이 부를 판이었다.
이게 어찌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에 국한 된 일이었겠는가. 제의를 받는 수많은 아직 정체성을 찾지 못한 예술가와 IT종사자들에게 교수라는 직업은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겠는가.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안정과 물질적 안정을 택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점을 보면 현재 애니메이션 대학의 문제점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교육의 중심 구성원들의 욕구가 이미 처음부터 예술과 물질적 안정 사이에서 결정된 결과였으니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판이 이제는 물질적 욕구와 세력싸움만이 남은 천박한 판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라니 학생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학생의 졸업 후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학교와 교수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판에서 학생들은 소모품과 같은 존재로 야근만 밥 먹듯 하고 5년이 지나기도 전에 회사에서 떨어져 나와야 하는 회사들로 총알 소모 되듯 소모되고 있다.
그들이 30살이 넘어 자신보다 더 싼 임금의 20대에게 떠밀리듯 회사에서 퇴사했을 때 학교의 취업정책을 나무라기엔 너무 늦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현재의 대학의 교수에게는 학생의 10년을 책임지기보다 당장 내년에 있을 교수평가가 더 중요한 일이다.
학생들은 산업에서 배울 수 없는 그 다른 무엇을 배워가야 할 대학에서 물질적 안정을 택해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는 교수들에 의해 소모품처럼 산업으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한국의 애니메이션과 교수들에게 부탁한다. 10년 전 당신들이 선택한 선택에 대해 뭐라고 말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마도 지금의 나에게 똑같은 유혹이 온다고 해도 그것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더 커진 욕구를 위해 학생들을 희생시키지 말길 바란다. 학생들이 자신의 10년 후를 설계할수있는 교육을 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애니메이션 판은 사라지고 10여 년 전 당신들이 선택한 안정적 삶 역시 앞으로 10여년 밖에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