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나는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그렇게 크게 받은 편은 아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내가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작인 <미래소년 코난>부터 데자키 오사무의 <내일의 죠> 등등 어렸을 때 티비에서 방영해주던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일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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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포스트에도 올려놓았지만 영상자료원에서 불타는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연대기 라는 행사가 진행중이다.
오늘 신동헌 감독 특별전을 하기에 갔는데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홍길동> 과 <호피와 차돌바위>를 볼수있었다.
신동헌 감독님도 직접 오셔서 감독과의 대화를 했고 프로그래머의 소개로 신감독님과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내가 물었다.
-감독님, 홍길동은 1967년 당시 엄청난 히트를 쳤었고 6개월만에 다시 호피와 차돌바위를 내놓으셨고 또한번 대히트를 치셨습니다. 근데 왜 그 이후 작품이 없는거죠? 1년에 두편이나 장편애니메이션을 내놓으셨잖아요.
-애니메이션 계속 하면 폐가망신할꺼 같더라고..하하 그때 세기상사(홍길동의 제작사. 현재의 대한극장 소유주)가 제작비로 180만원 내놓았는데 직원들 두달 월급 주고 나니까 돈이 바닥 나더라고 그래도 제작사 측은 기일까지 만들어서 내놓으라고 하지..그래서 빚지고 돈 꾸고 해서 만들었는데 만들기러 한 기일이 이틀 늦었다고 흥행수익 못준다고 하는거야 빚만 잔뜩 끌어앉고 돈은 구경도 못했지 뭐.
-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히트를 쳤는데 수익을 못준다고요?
-그 사람들이야 원래 그렇지 그래서 회사 옮겨서 호피와 차돌바위를 6개월 만에 만든거야.
-근데 호피와 차돌바위는 몇명이서 작화를 하신거에요?
-나랑 내 동생(신동우 화백, 홍길동과 호피와 차돌바위의 원작자)이 다했지..
-예? 두분이서 다 하셨다고요?
-그럼~ 그것도 양재물에 미군 쪼가리 필름 씻어가며 했지..
-그럼 그 회사는 괜찮은 회사였나요?
-어이구 제작자 놈들이야 다 악당이지 그 놈들 계약서 쓰기 전까지는 감독님 감독님 하다가도 계약서 싸인 딱 하니까 야! 자! 하더라고...그래서 호피와 차돌바위 만들고 집까지 날릴 뻔 하고 애니메이션계 떠난거야.
옆에 신동헌 감독님과 함꼐 오신 감독님이 거들었다.
-감독님 저도 그랬잖아요 해로와 토레미 할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죠 뭐...
-예? 해로와 토레미는 2002년 작품인데...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쩝..하기야 뭐 현재까지죠...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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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부터 최신까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을 한번에 정리해서 볼수 있는 상영회가 있어서 알립니다.
(2008년 9월 18일 ~ 9월 28일 시네마테크KOFA  한국 영상자료원)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에서 부터 <셀마의 단백질 커피>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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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만에 발견된 홍길동의 필름이 왜 없어졌는가에 대한 한 블로거의 이유는 흥미롭다.

그 블로거는 홍길동의 필름 유실은 밀짚모자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에 유행했던 밀짚모자의 머리 부분을 장식했던 검은 띠는 바로 필름이었다.  그 밀짚모자를 만들기 위해 많은 영화 필름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지금 들으면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현실이 과연 그때의 상황과 많은 차이가 있을까?


홍길동은 당시 관객 30만 명의 기록적인 흥행을 세웠다. 한마디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만들어준 필름이 또 한번 돈을 벌 기회가 있는 것이다. 밀짚모자의 장식으로써 또 한번 돈을 벌수 있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이거야 말로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원 소스 멀티 유즈 아니겠는가?


한국이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화라는 건 단지 적은 돈으로 재수 좋으면 아주 큰 돈을 만들 수도 있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것이다. 그리고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나타나면 그 황금 알 뿐만 아니라 그 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의 원천을 발견해야 하고 그 원천이 발견 되지 않으면 그 거위로 거위 백숙이라도 끊여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문화 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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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은 1967년 1월에 개봉한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사진>을 발굴, 복원했다고 15일 밝혔다.

당시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던 '홍길동'은 신동헌 감독의 동생인 고(故) 신동우 화백이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해 인기를 모았던 만화 '풍운아 홍길동'을 토대로 만든 작품. 지금까지는 필름이 보존되지 않아 문서상 기록으로만 남아 있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같은 신동헌 감독이 1967년 12월 극장에서 개봉했던 '호피와 차돌바위'였다. 영상자료원은 지난해 말 애니메이션 연구자 김준양(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조교수)씨를 통해 필름이 일본에 있다는 제보를 받고, 16㎜ 판본을 입수한 뒤 보수와 복사 과정을 거쳐 필름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애니메이션 연구 과정에서 일본 지방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홍길동'도 있지 않을까 해서 소장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상자료원측은 "'홍길동'의 발굴과 공개는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최초 작품을 찾았다는 의미뿐 아니라, 토대가 허약했던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 연구를 자극하여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영상자료원은 오는 5월 9일부터 3주 동안 열리는 영화박물관 기념 영화제에서 '홍길동'을 폐막작으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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